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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잘못이 아니야: 유진과 유진 리뷰

by gonggibook 2025. 6. 17.

제목: 유진과 유진

저자: 이금이

출판사: 밤티

출간연도: 2020 (초판 2004)

 

너는 단지 피해자일뿐이야.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너는 죄가 없다. 그러니 고개를 꼿꼿이 들고 날개를 펴라.’

유진과 유진은 단순한 청소년 소설이 아닌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의 깊은 상처와 그 상처를 딛고 나아가려는 과정을 그린 진심어린 고발서이자 치유의 기록이다.

이 책엔 유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아이가 등장한다. 중학교 2학년이 된 큰 유진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같은 반에 배정된 작은 유진’, 그녀는 분명 어릴 적 유치원에서 함께 지낸 그 아이였다. 눈망울이 유난히 컸던,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 유치원 때 그 사건이 있은 후 어느 날 소리 없이 사라졌던 작은 유진.

 

큰 이유진은 작은 유진을 아는 척했지만 작은 유진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알면서 모른척 하는 건지, 큰 유진은 혼란스럽다. 인생에 가장 큰 상처이자 사건이었던 그 일을 잊어버릴 수 있을까?

 

큰 유진과 작은 유진은 같은 유치원 동기다. ‘그 사건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유치원 원장이 원생을 성폭행했다. 그 속엔 큰 유진과 작은 유진도 피해자였다. 어린 아이에게 친절과 둘만의 비밀이라는 말로 악마보다 더 한 짓을 했다. 작은 유진은 그날의 충격에 인형 목을 자르고 다리를 찢었다. 유진의 엄마는 이 일을 계기로 유치원 원장의 범죄를 알게 되고 같은 원생의 엄마들과 함께 신고를 한다. 하지만 미처 사건이 마무리가 되기도 전에 작은 유진네는 동네에서 모습을 감춘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같은 반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큰 유진에게 그 사건은 미친개한테 물린 일이라고 여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자기의 뜻과 는 상관없이 일어난 일이다. 하지만 작은 유진이는 달랐다. 작은 유진의 부모들은 유진이 그 사건을 기억에서 지워버리게 만들 정도로 모른척했다. 오로지 작은 유진이 공부로 성공하길 바랐다. 그러다 큰 유진과 같은 반이 되면서 작은 유진은 자신이 그 사건의 피해자였단 기억이 떠오르면서 혼란을 겪게 된다.

 

내가 그런 일을 당한 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만회하기 위해 빚쟁이처럼 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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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갚아도 원금은 줄지 않는 악성 사채처럼 아무리 잘해도 내가 당한 그 일은 원죄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경시대회에서 큰 상을 받고 전교 1등이나 해야 겨우 딸로, 손녀로 인정받았다. 그것도 이자에 불과하지 원금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삶이 단 한번의 실수로도 추락하는 외줄 타기 같다고 생각했던 거다.

아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이나 보호는 커녕 끊임없이 빚 독촉을 받으며 산 셈이다. 

 

성폭력의 실태

2024년 여성가족부 여성폭력 실태조사 결과 여성 3명중 1명은 성폭력을 비롯해 신체·정서적 폭력, 통제·스토킹 등 폭력 피해를 한 번 이상 경험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023년 상담 통계 및 동향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 상담소에서 작년 한 해 처음으로 성폭력 피해 상담을 받은 사람은 557명이었다. 이중 여성은 497(89.2%)으로, 성년 여성이 65.7%로 가장 많았다. 아는 사람에 의한 성폭력 피해는 470(84.33%)으로 비중이 컸다.

 

왜 우리는 피해자에게 왜 그랬니?”를 묻고, “네가 조심했어야지라고 말하는가?

왜 가해자의 동기와 배경을 분석하면서도, 피해자에게는 침묵과 망각을 강요하는가?

 

우리는 왜 성폭행 피해자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하지 못할까. 왜 자꾸 피해자한테서 가해자의 동기 원인을 찾으려고 하고 프레임을 씌울까. 성폭행 피해자에게는 범죄의 원인이 없다. 피해자일 뿐이다. 우리는 피해자를 감싸고 지지하며 세상으로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세상이 바뀌고 법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가해자는 당연한 처벌을, 피해자는 안전한 보호를 해야한다.

 

유진과 유진은 그런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이 아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 책을 읽는 내내 분노했고, 울었고, 숨이 막혔다.

그러면서도 희망이 있다면, 결국 유진과 유진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아픔을 직면하고, 삶을 회복하려는 날갯짓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떠올리게 할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용기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반드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야 한다.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그리고 법과 제도를 바꿔야 할 누군가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