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보
제목: 가녀장의 시대
저자: 이슬아
출판사: 이야기장수
출간연도: 2022년
가부장제는 변한다
집안의 가장인 남성이 다른 가족 구성원보다 강한 권한을 가지고 가족을 통솔하는 가족 형태를 가부장제라고 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2대, 3대가 함게 사는 가족구성원 형태가 흔한 예전에는 가부장제가 흔하고 당연한 시대가 있었지만, 이제는 1인가족 혹은 자녀들만 따로 분가하여 사는 경우도 많아 집안의 남자가 가장이 되어 집안을 통솔하는 가부장제는 그 형태가 흐려지고 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당당히 여성인 딸이 집안의 가장이 되어 통솔하는 가녀장제를 이야기하는 이슬아 작가의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는 현실과 소설, 에세이를 합쳐놓은 듯한 이야기로 마치 4D로 보는 듯한 생생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가녀장의 시대라하여 페미니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지는 않을까? 남성과 여성의 차별이야기가 심각하게나오지는 않을까? 했는데 너무나도 유쾌하고 발랄하게 주인공 '슬아'의 가녀장의 이야기가 그려져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 킥킥거리면서 재미있게 읽었다.
최근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몰입도가 높았으며, 가벼운 듯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다.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슬아
책 속 주인공은 작가인 '슬아'이다. 집안의 가장인 슬아는 새로운 집을 매매하여 주거지이자 출판사로 운영한다. 출판사 대표는 주인공 슬아이며, 아버지'웅'이와 어머니'복희'를 출판사'낮잠'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한다.
근무시간동안에는 웅과 복희는 슬아를 사장으로 깍듯이 모시며 직원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슬아역시 고용주로써 가장으로써 강단있고 철저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아버지 웅이는 집안의 청소와 정리, 고양이 두마리르 캐어하고, 슬아의 외부 출장에 기사노릇을 하며 출판사낮잠에 필요한 모든 소소한 일거리들을 도맡아한다.
주말에는 대출을 갚기위해 행사장비를 대여해주고 설치하는 일을 하는 등 사방팔방으로 바쁜 재주꾼이다.
어머니 복희는 주방일을 도맡아하고, 슬아의 업무 메일 체크와 강의요청, 원고요청 등의 메일에 답장을 회신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웅이와 복희는 사장인 슬아에게 깍듯히 '사장님'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며 존댓말을 한다. 그래도 딸인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그게 또 참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웅이와 복희의 재능을 진정으로 봐주고 그에대한 합당한 보수를 주며, 추가근무, 외근업무에 대한 수당까지 잘 챙겨주는 철저한 사장이다.
복희의 주방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노동으로 봐주고 재능으로 인정하는 슬아를 통해서 내가 나의 부모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게 됐다.
나의 아빠는 집안에 대소사를 당연하게 책임지고, 돈을 벌어오는역할을 해야하며 때되면 끼니를 챙기고 집안 청소와 빨래를 하는 엄마를 마치 당연히 그자리에 걸려 있어야 하는그림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한번도 그 역할이 당연한게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지 못했다.
가부장제 속에서 어머니, 며느리, 할머니의 사릶노동은 결코 돈으로 환산되지 않았고, 슬아가 복희의 살림노동에 월급을 산정한 최초의 가장이었던 것이다.
이 책이 얼마나 킥킥 거리면서 웃음을 주는지, 이렇게까지 유쾌하게 풀어내도 되나 싶을만큼 재미가 있었다.
에피소드 중 하나로, 웅이는 팔에 타투를 새기고 싶어한다. 슬아가 그려준 도안대로 오른팔에는 청소기를, 왼팔에는 대걸레를 새기고 집에 들어온 웅이.
나풀나풀 팔을 앞뒤로 흔들며 청소를 하러가는 웅이의 뒷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이렇게 귀여운 아버지가 있다면 달려가서 백허그라도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복희는 매년 자매들과 함께 그녀의 어머니 '존자' 집으로 가서 김장을 한다. 다같이 방에 모여 존자의 손녀 슬아가 '존자'에 대한 인터뷰 내용을 복희가 읽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복희가 대학교 합격을 했는데 입학금을 못줘 결국 복휘는 동생들을 대신해 대학교 입학을 포기하고 경리로 취직했었다는 내용이다. 복희어머니'존자'는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이 아팠을 테다.
지난 주말, 요양원에 계시는 할머니를 뵙고왔다. 할머니는 연세가 벌써 93세가 되셨는데도 매일 아침 신문을 읽으시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다 알고 계셨다.
어릴때부터 영특해서 할머니의 아버지와 시아버지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셨다고 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 자란 나는 글쓰기도 좋아하시고 뉴스를 꼬박꼬박 챙겨보는 할머니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어릴때 부터 똑똑했는데,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뭐라도 한자리는 차지했을건데."라며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할머니 아들로 태어났으면 집안에서 대학교도 보내주시고, 공부도 마음껏 시켜줬을텐데, 할머니 말씀처럼 딸로 태어나 일찍 시집가셔서 고생만 하셨다.
아직도 더 공부하지 못한게 이리 한이 되시니 마음이 아파 눈물이 자꾸만 흘렀었다.
그놈의 가부장제가 뭐라고. 그 시대때에는 다들 먹고 살기 어려워 남자는 해뜨면 해질때까지 바깥일하고 여자는 집안일하며 시부모님에 자식과 시동생들까지 돌보랴 세월을 다 보냈었다.
이 책은 가부장제 이야기도 나오고, 비건라이프도 짧게 나오며, 슬아의 지인들인 동성(레즈비언)이야기도 나온다. 그럼에도 무겁거나 부담스럽지 않고 웅이와 복희 역시 유쾌하게 받아들인다.
한 번 읽으면 끝까지 술술 읽히는 책이니, 꼭 읽어보길 바란다. 따뜻한 햇살받으며 주말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으며 부모님 세대와도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