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정보
제목: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저자:김이삭 (단편소설집)
출판사: 래빗홀
출간연도: 2024
여름 날 잘 어울리는 호러‧공포물
책 제목만 봐도 여자라는 성별로 무시와 차별을 받는 이야기겠구나 했다. 거기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괴담으로 말이다. 총 5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김이삭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호러 공포 소설이다. 첫 단편부터 마지막 단편까지 몰입도가 높고 반전과 스토리가 매우 탄탄한 책이다. 사실 꽤나 무서워서 집에서 읽지 못하고 회사에 가서 점심시간마다 읽었다.
여러번 말했지만 굉장한 쫄보인 나로서는 뒤늦게 발견한 표지의 기머리 풀어헤친 귀신 때문에 항상 책을 엎어놓고 있어야 했다. 무서운 이야기 좋아하는데, 거기에 사연을 곁들인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책 추천한다.
한 많은 사연에는 꼭 여성이 있다
단순 호러 이야기가 이야기인가 싶었지만 각각의 단편마다 세상 밖으로 쫓겨난 여자의 억울하고 애처로운 이야기. 첫 단편 성주단지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여자 주인공이 지방의 타 전공의 연구소에서 석 달간 대체인력으로 일을 하러 떠나면서 생겨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결혼 날짜까지 잡은 회계사 남친과 헤어지면서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미친년’소리를 듣고 또 교수로부터 미쳤냐는 말까지 들으며 사람들을 피해 지방의 연구소로 떠난다. 사실 피할 수 밖에 없던 건 파혼까지 했어야 했던 남자친구였지만.
연구소 소장의 제안으로 300년 된 고택에서 석 달간 지내면서, 기이한 일들을 연속적으로 겪게 되는 에피소드이다. 우연히 고택에서 오랫동안 모셔온 성주단지를 깨버려서 새로운 단지를 사서 원래 자리에 잘 모셔둔다. 고택에는 여러개의 항아리들이 있었던 그 중 하나인 성주단지를 실수로 깨버렸던 것이다. 두 달쯤 지난 후부터 핸드폰으로 문이 열리면 울리는 알람이 울렸다. CCTV를 돌려봐도 그 어디에도 열린문은 없었지만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 왔음을 직감했다.
어느 날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올 때 닫으려는 문을 밖에서 당기는 느낌을 받는다. 벌벌 떨면서 문을 닫고 집안으로 뛰어들어가 CCTV를 돌려보지만 집 주변에도 집 안에도 아무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사람의 소리도, 바람소리도 아닌 그 무언가의 소리가 들리면서 몇 번씩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문을 자꾸만 열려고 하는 소리,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알 수 없는 존재를 느끼게 된다. 집안의 CCTV를 돌려봐도 그 어디에도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분명 이것은 사람이 아니다. 이것은 귀신이다. 어느 날 고택 안채에 자기 책을 가지러 온 집주인 아들에게 귀신의 존재를 말했더니 행랑채로 데려가 함께 창문으로 그 존재를 확인해준다. 달빛에 비친 사람의 형태... 그것은 분명 귀신이었다. 주인집 아들에게 그동안 귀신에게 시달렸던 이야기를 모두 전하는데... 과연 그녀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왜 주인집 아들은 덤덤하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을까?
낭인전 이야기는 옥녀가 여섯번째 얻은 서방마저 줄초상을 당하고 마을에서 회가출송을 당한 이야기다. 나라가 어렵고 살기가 힘드니 마을 인심이 어찌나 흉흉한지 마음 사람들 모두 어렵게 살고 있었는데 이런 시국에 옥녀가 벌써 몇 번째나 서방들을 다 잃고 초상까지 연이어 일어나니 옥녀가 마치 저주 에 걸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그 마을에서 쫓아내버렸다.
산을 넘고 홀로 살 곳을 찾아 떠난 옥녀는 우연히 자기를 도와줬던 늑대인간을 만나면서 함께 살게 된다. 옥녀는 할머니가 전해 준 늑대인간 이야기를 곱씹으며 산 속 빈집에서 살아가는데, 사람을 죽인 늑대인간을 찾는다는 마을에 붙은 방을 보게된다. 과연 늑대인간과 살게 된 옥녀는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았을까?
마지막 단편인 교우촌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숨어서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 교우촌의 이야기다. 교우촌은 산 언덕 아무도 찾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어느 날 마을에 괴소문이 퍼지는데 사람머리가 발견된다는 것이다.
소녀는 어느 날 밤에 괴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짐승의 목소리도 아닌 사람의 목소리도 아닌 울부짖는 목소리. 소녀는 그 소리를 파헤치기 위해 소리가 나는 동굴로 들어가게 되는데. 과연 괴수는 정말 있는 것일까?
전체적으로 단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들은 핍박받고 차별받고 쫓겨난 여인들이 자기의 생명을 위해, 삶을 위해 억척스럽게 자기 삶에 놓여진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린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 받던, 함부로 대해져도 괜찮던 그 시절의 혹은 현대의 여성들을 호러 이야기로 잘 풀어낸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