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삼재를 피하기 위해 했던 굿
한국에서는 태어난 해에 따라 12가지 동물 중 하나가 매칭되는데, 이를 ‘띠’라고 부른다. 그리고 띠에 따라 3년 동안 재수가 없다는 ‘삼재’라는 개념이 있다.
나도 10대 초반, 삼재에 해당하는 시기를 겪었다. 혹시나 큰 사고라도 당할까 걱정이 됐던 가족들은 유명한 산에서 수양을 했다는 무당을 찾아가 굿을 하기로 했다. 우리는 산기슭의 작은 신당에서 밤새 굿을 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신당 주변의 산속 분위기, 신령들의 그림과 장식품들, 화려한 한복을 입은 무당, 그리고 그녀가 휘두르던 커다란 칼(소품)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장구와 징, 꽹과리 소리에 맞춰 무당은 신당 바닥을 뛰어다니며 주문을 외웠고, 나는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고 계속 절을 했다. 이상하게도 무섭지는 않았고, 오히려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묘한 즐거움이 들었다.
굿이 끝나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마무리된 의식. 무당이 차려준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는데, 어린 시절 먹었던 밥 중 가장 맛있게 느껴졌다. 당시 나는 12~13살이었고, 무서울 법도 한데 그저 무던한 아이였다.
새로운 무당의 모습
《신령님이 보고 계셔》는 젊은 여성 무당인 홍칼리가 자신의 신내림 과정과 무당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에세이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모태 크리스천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무당이 되었는지, 첫 신내림을 받았을 때의 경험, 그리고 세계 각국의 샤먼들과의 만남을 통해 깨달은 점들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또한, 전통적인 무당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무당의 모습을 보여주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보통 사람들은 무당을 찾을 때 기쁜 일보다는 힘든 일을 겪을 때가 많다. 나 역시 가족이 아팠을 때, 답답한 마음에 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무당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녀는 ‘굿을 해야 가족이 살 수 있다’고 했지만, 비용이 너무 비싸 망설였고 결국 돌아 나왔다. 때때로 ‘그때 굿을 했더라면 가족이 건강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지만, 결국 삶과 죽음은 하늘이 정해주는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받곤 한다.
책에서도 무당은 단순히 점을 치는 사람이 아니라,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사람들은 삶의 고통 속에서 조언을 얻고자 무당을 찾고, 무당의 한마디에 울고 웃고 안심한다. 이는 마치 정신과 상담사를 만나는 것과도 비슷하다.
무당,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홍칼리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흥과 한을 나누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무당을 이야기한다. 그녀는 부적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누고, 춤으로 흥을 전달하며, 글과 말로 소통하는 존재가 무당이라고 말한다.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이 무당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무당의 이미지는 여전히 고정되어 있다.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날카로운 눈매, 새빨간 립스틱, 반질반질한 쪽진 머리, 방울을 흔들며 호통치는 무당을 자주 본다. 때로는 사기꾼처럼, 때로는 비련의 주인공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외국에서 ‘나는 샤먼이다’라고 소개하면 “와, 멋있다”라는 반응을 얻지만, 한국에서는 의심의 눈초리나 연민 어린 시선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무속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무당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존재였다.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무당의 따뜻한 한마디에 안심할 수도 있었다. 무속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하나의 문화적 요소로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현대적인 무당, 변화하는 무속 문화
홍칼리는 전통적인 무당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유튜브를 통해 운세를 점쳐주고, 비대면으로 상담을 진행하며, 청바지를 입고 비건 생활을 하기도 한다. 과거의 화려한 한복과는 다른, 현대적인 무당의 모습이다. 최근에는 젊은 무당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며, 일반인들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당도 변화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속 신앙은 시대에 맞게 변할 수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편견 없이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을 추천하며
이 책은 무속에 관심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쉽게 읽히면서도 ‘삶이란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준다. 신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얻을 수 있다. 무속 신앙과 샤먼의 삶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책 정보
제목: 신령님이 보고 계셔
저자: 홍칼리
출판사: 위즈덤하우스
출간 연도: 2021년 8월
글쓴이: [gonggi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