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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낯선 노인의 이름: 초보노인입니다 리뷰

by gonggibook 2025. 2. 27.

책정보 

제목: 초보노인입니다 (브런치북 대상 수상)

저자: 김순옥

출판사: 민음사

출간연도: 2023년 

 

 

흰머리가 나던 날

30대 중반에 들어서자 흰머리가 머리 옆으로 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거울앞에서 머리를 말리면서 발견했는데 흰머리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서러워 펑펑 운 기억이 있다.

흰머리가 보이는 족족 뽑았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역부족이라 언젠가 새치 염색을 해야 할까 싶다. 익숙해질만도 할 것 같은데 여전히 흰머리를 볼때마다 괜시리 서럽고 슬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40대에 들어섰다니 여전히 믿기지가 않는다. 20대와 30대에는 무엇을 해야지라는 늘 버킷리스트를 열심히 만들고 실천했는데 지금은, 곧 있을 나의 노년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기분이다.

 

이렇게, 나이든다는 것에 신경을 쓰다보니 자연스럽게 이 책도 선택했다. 60에 들어선 저자가 실버아파트에 입주하게 되면서 겪는 일들과 감정들을 쓴 책인데, 아직 20년이 더 있어야 60이 됨에도 저자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공감이 되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초보노인이 될테지.

촬영: gonggibook

 

실버아파트 입주

저자는 급작스러운 사정으로 남편과 함께 실버아파트에 입주하게 된다. 실버아파트는 대부분 80대 노인이 많았고 치매 등 질병을 앓는 사람이 대부분이다보니 아파트 내 부대시설도 매우 잘되어 있었다.

삼시세끼를 다 먹을 수 있는 식당, 체육시설, 의료시설 연계까지 노인이 지내기에는 더없이 편한 아파트였다.

저자의 남편은 매우 만족했지만, 이제 60이 갓 된 저자는 실버아파트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게다가 친구들이 '요양원에 들어갔다며?'. '그 나이에 실버아파트라니?' 등의 얘기를 들을때마다 괜스레 부아가 치밀었다.

 

앞집, 옆집 모두 노인들만 살고 있고 단지를 나가도 80대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으니 아파트는 활기와 생기가 없었다. 대신 평온하고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그마저도 치매를 앓고 있는 입주민이 가끔 소란을 피울때에는 깜짝 놀라는 일도 몇번 있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 앞이 소란스러워 나가보니 치매걸린 여성노인과 딸이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에는 할아버지가 타고 있으셨는데 반응도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서 왜그런가 했더니, 여성노인이 치매에 걸려 할아버지를 자신의 남편이라고 생각하고 따라 가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말리고 있는 딸과 이런일을 자주 겪으셨는지 아무렇지 않게 가만히 계시는 할아버지까지 실버아파트에는 이런일이 자주일어난다.

 

출처: 픽사베이

나이가 든다는 것

영화 은교에도 나오는 대사면서 미국의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가 남긴 말이 유명하다.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들고 늙어감에도 젋을때는 나의 젊음이, 활력이, 청량함과 푸릇함이 늘 유지될 것 만 같은 생각을 한다.

 

여름날, 버스정류장에서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나무가 초록잎을 마구 흔들며 특유의 청량함을 뽐내고 있었다. 나도 저럴때가 있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며 17살붙 20대까지 가지고 있던 푸릇함이 그리워졌다.

, 괜시리 서글퍼지네.

 

실버아파트에는 나이가 들었지만 또래 노인들보다 멋쟁이에 아우라까지 내뿜으며 멋진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도 많이 나온다. 때로는 등산로에 돌에 혹여라도 노인들이 걸려 넘어지지 않을까 직접 조용히 돌들을 매일 치우는 노인, 예쁜 꽃들을 심고 가꾸는 노인, 수영과 음악을 즐기는 노인 등 모두 그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잘 살아간다.

 

나도 마흔이라는 나이가 너무 낯설지만, 곧 적응하며 잘 살아가겠지. 그러다 어느새 앞자리가 6이 되었을때 작가처럼 덜커덩 거리며 어색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 나이가 되어서야 얻을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기대도 된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상당히 괜찮은 일이었다. 죽음을 기뻐할 것까진 아니어도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 죽음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접근해 간다는 것과, 나름 계획까지 세워 볼 수 있다는 것."

p. 163.

 

이 책은 30대가 읽어도 40대가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읽으면서 자신의 부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생각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줄 곳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만난 노인들이 겹쳐보일때가 있었다.

하루만에 쉽게 읽히는 책이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