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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보다 큰 마음, 한 권의 위로-시와 산책 리뷰

by gonggibook 2025. 4. 18.

책정보

제목: 시와 산책

저자: 한정원

출판사: 시간의 흐름

출간연도: 2020

 

글로부터 위로를 받는 다는 것은

 

한정원 작가의 '시와 산책'은 작년, 내가 상실을 겪을 때 함께 자리를 지켜준 준 친구가 선물해줬던 책이다.

택배로 온 책은 한동안 책상위에 덩그러니 있었다. 오랜 기간 편집자로 일한 친구가 고심하여 보낸 책이었음을, 글에서 조금이나마 위로받길 진심으로 바랐던 친구의 마음을 알았지만 책을 펼쳐볼 기력도 마음도 그리고 정신도 없던 터라 방치해있었다.

 

게다가 사실 나는 시와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책을 좋아하지만, 시집만큼은 내 책장에 잘 자리하지 못했던 장르였다.

 

그러다 어느 , 무심코 넘긴 첫 페이지에 오열을 하고 말았다. ‘우주보다 더 큰'이라는 시를 읽으며 친구가 바랬던 마음이 뭔지 와 닿, 왈칵하고 꾹꾹 눌러 담았던 모든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

책을 읽으며, 오열했던 적이 있었던가. 이렇게까지 위로를 받았던 적이 있었던가 싶었다.

촬영:gonggibook

우주보다 더 큰'이라는 시는 이별을 한 사람이 흰 눈으로부터 위로 받는 마음을 나타낸 것 같았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마지막 두 문장을 도돌이표마냥 자꾸만 읽었다.

 

[눈은 흰색이라기보다 흰빛이다. 그 빛에는 사랑하는 얼굴이 실려 있을 것만 같다. 아무리 멀어도 다른 세상에 있어도, 그날만은 찾아와 창밖에서 나를 부르겠다는 약속 같다. 그 보이지 않는 약속이 두고두고 눈을 기다리게 한다.

내일은 눈이 녹을 것이다. 눈은 올 때는 소리가 없지만 갈 때는 물소리를 얻는다.

그 소리에 나는 울음을 조금 보탤지도 모르겠다. 괜찮다. 내 마음은 온 우주보다 더 크고, 거기에는 울음의 자리도 넉넉하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눈이 와서 땅이 질퍽해질 때면 더더욱.

하지만 작년,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냈던 그날, 겨울이라기에는 이른 큰 눈이 내렸다.

그 후로, 눈 오는 날이면 그 사람이 생각났다.

시끄러운 내 마음을 흰 눈이 조용히 덮어주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눈이 녹을 무렵 내 마음의 울음도 조금은 녹아내렸던 것 같다.

촬영: gonggibook

시가 좋아질 것 같습니다

 

한정원 작가는 소설처럼 사람에 대해 일목요연하게, 자세하게 보여지는 것보다는 조금씩 보여지고 상대방이 상상하게끔 하는 게 좋다고 한다.

시에 침묵이 많다고 생각한다는 작가, 그래서 침묵이 좋다는 한정원 작가가 소설이나 에세이보다 시를 쓴 이유였지 안을까 싶다.

 

그래서 시와 산책에서도 글을 읽다보면 나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입하여 글 속의 사람들에게 배경을 만들어주고, 표정을 만들어 주고, 감정을 입히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친구 덕분에 글로부터 위로를 받고, 외면 받았던 시집을 곁에 둘 수 있었다. 그리고, 한정원 작가의 또 다른 시집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는 책을 얼마 전에 샀다.

 

시와 산책' 모든 시들이 너무나 좋았는데 내가 추천하는 또 다른 시는 '행복을 믿으세요?’이다. 소록도에 있는 한센인에 대한 이야기인데 몇 번씩 사회복지 실습생들에게 한센인에 대한 이야기를 교육용으로 다뤘던 주제라 이 글을 읽자마자 마음이 저려왔다.

그 중 이런 문장이 있다.

[잘 정돈된 숲과 공원 어디든 그들의 눈물이 배지 않은 곳이 없었다. 몸의 일부를 잃어가며 만들었기에, 소록도의 모든 길은 곧 그들의 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몸속에는 노래가 살고 있었다. 소설이 희망했던 것처럼 긴 세월 '당신들의 천국'이었던 곳을 소록도 사람들은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나처럼 시가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라 권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시와는 다른 느낌이라 마치 짧은 에세이를 읽는 것 같아 쉽게 읽힐 것이다.

 

그리고, 시로부터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